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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ck Mobile을 출시하며

“내 모습이 변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자”

이 생각은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호르몬에 지배당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내가 인생에서 뭐라도 의미있는 것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릴적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보면서 사람이란 존재는 참 빠르게 변하는구나를 체감했고, 그즈음 읽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 에서 1~2년이 지나면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가 대체된다는 사실 -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분자적으로’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다 - 을 알게 되면서 스쳐 지나가는 내 모습, 지금 이렇게 남겨두지 않으면 미래에서는 절대 되찾을 수 없는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내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같은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삼각대를 두는 자리에 스티커도 붙여두었고, 심지어 초반 3주간은 내가 서있는 자리에 A4용지를 붙여두고, 손발 따라그리기 하듯 발 모양을 그대로 따라 그려놓기도 했다. 첫 주의 내 사진들을 돌아봤을 때는 참 별거 없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3년뒤, 5년뒤의 나를 상상했다. 어떤 모습일지, 뭘 하고 있을지 전혀 그릴 수 없는 미래. 그 미래에 나는 지금의 나를 지켜보며 ‘참 많이 변했다’며 사진을 돌아본다. 그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 이 사진찍기는 미래의 나와 소통하는 하나의 메시지, 지금의 나만 할 수 있는 한 걸음이라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만족하며 잠에 들 수 있었다.

앱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되어있었다. 나름의 개발 경험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내 사진찍는 습관을 앱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를 맞춰서 사진 찍고, 카메라에서 사진을 옮기고, 영상까지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번거로웠기 때문도 있었고, 이 습관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기 힘들다는 점도 있었다. 나도 번거로워 죽을 판인데 남에게 해보라고 제안하는건 어불성설이지 않나. 그렇게 사진 구도도 맞춰주고, 사진도 시간순으로 저장해주고, 영상 제작까지 버튼 하나에 해결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출시까지 생각하면, 이 앱을 나만 쓰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셀링 포인트, 즉 남이 봤을 때 끌리는 점이 있어야 했다. ‘본인의 모습, 또는 변화하는 무언가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뭔가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몸을 키우는 운동인들, 아기를 키우는 부모님들, 애완동물을 키우는 주인들은 그 대상에 대한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는 것 또한 즐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상까진 쉬웠다

그렇게 기획한게 23년도 여름이었고, 25년 6월에 출시를 했으니 약 2년간 앱을 만든 셈이다. 23년도 가을학기에 휴학을 결정하면서 앱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6개월동안 어떻게든 만들면 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목표는 24년 새해와 함께 출시하는 거였다. 하지만 계획은 언제나 계획이고, ‘핵심 기능이 동작은 한다’ 수준의 앱을 뒤로한 채 24년 2월 육군 논산훈련소로 입대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개발에 집중하기에 잡음이 많은 시절이지 않았나 싶다. 휴학을 했지만 자취방은 대학가에 있었고, 매주 테니스와 해킹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입대 5일 전까지 겨울방학 영어캠프 도우미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군 입대는 앱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논산훈련소는 나를 신체적으로 지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20kg 군장에 짓눌리면서 내 모든 근육으로 버티는 그 순간에 나는 이 세상과 제일 가까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라고 적었다. 매일 밤 나는 논산에서 해방된 이후, 국방의 의무에서 해방된 이후의 삶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짐을 느꼈다.

열정이 다가 아니다

하지만 열정이 과하면 일을 그르치듯, 자대배치 후 3개월간 남는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앱 개발에 쏟아부었지만 뭔가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화면 구성은 직관적이지 않아 나만 이해할 수 있었고, 앱이 출시할 정도의 완성도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앱 개발만 하다보니까 질리기 시작했다. 배정된 업무도 많았고, 7월 이후로는 암호분석경진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대회에 나갈 기회들이 생기면서 앱 개발에는 소홀해졌다.

그렇게 24년은 끝이 났다. 물론 업무에서 성과를 내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즐거웠다. 하지만 즐거움도 결국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며 그런 자극적인 즐거움은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 행복은 지루함에서 온다는 말이 점점 이해되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편안한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25년의 겨울과 봄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Stack 개발에 집중할 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도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 이후, 이제는 진짜 출시를 위해 달려볼 때가 되었다.

옆길을 산책하며 배운 것들

다른 집중할 일들이 많아서 앱 개발에 소홀했지만, 오히려 그 경험들이 되돌아와 개발에 도움이 된 경우들도 있었다.

군 업무적으로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로 맡아서 진행했다. 특성상 인수인계를 문서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코드를 최대한 알아보기 쉽고 깔끔하게 작성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클린 코드>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으며, 프로젝트 전체를 구조화하는 작업부터 이해하기 쉬운 변수/함수명 작성까지 개발에 필요한 여러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25년 초, 교내 개발동아리에서 Flutter 라이브러리 제작 팀에 2개월가량 참여하여 기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이때까지 개발을 많이 했지만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프로젝트는 경험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GitHub의 issue기능으로 업무를 나누어 배정하는 방법, 브랜치로 기능을 분리하여 개발하는 방법들도 배울 수 있었고, 다른 업무들로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서 기여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욕심내서 목표를 잡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만큼만 배정하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로써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

다시 앱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 현명하게 시간을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혼자서 열심히 하는것도 좋지만, 그건 나를 너무 편협하게 만든다. 물론 모든 기능을 다 구현하면 좋지만, 너무 오래걸리고 다양한 기능을 생각하느라 머리만 아프다. 욕심을 줄이자. 적절한 가지치기를 통해 출시까지 필요한 기능만 추리자. 선별한 기능들만 하나하나, 똑바로 잘 만들자. 그리고, 여유를 가지자.

아직 미숙한 앱이고,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고생 끝에 25년 6월 앱을 출시했다. 사실 출시한 이후로 코드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었달까.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앱 사용자로써 불편한 점만 대략 적어두는 정도만 하고 있다.

아직 앱 사용자는 적고,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앱에도 추가하고 싶은 기능이 많고, 오류도 많다. 이것도 당연하다.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완벽한 앱은 언제 만들 수 있을까? 1년뒤? 3년뒤? 아니면 10년뒤?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서 광고는 언제하지?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앱인가? 고민만 하다보면 생각만 많아지고 정작 행동은 못하게 된다.

이런 고민이 들 때면 언제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자각한다. 앱을 출시하는 것, 글을 작성해서 정리하는 것, 이 모든 불완전함을 알지만 세상에 내놓는 작업은 마치 내 모습을 처음 찍는 중학생의 나를 떠오르게 한다. 사진이 몇 장 없을때의 초라함, 그리고 사진들이 모여서 긴 영상을 만들 수 있을때 되돌아보는 미래의 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약속을 지켜주어 감사한다. 그리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기록을 남겨주어 감사한다.

어쩌면 인생은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감사받기 위해 행동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